18세에 수원공고를 마칠 때 프로 구단과 대학의 지명을 받지 못했고, 명지대 김희태 감독의 눈에 띄어 진학했습니다. 19세 4월에 라오스전으로 A매치에 데뷔했고, 6월에는 일본 교토 퍼플상가에 입단해 프로 선수가 됐습니다. 9월에는 시드니 올림픽에 나갔습니다. 20세에 2부로 떨어진 교토에서 38경기를 뛰며 우승과 1부 재승격을 이끌었습니다.
이름이 알려진 해21세에 한일월드컵 조별리그 포르투갈전에서 결승골을 넣어 한국의 첫 월드컵 16강 진출을 확정했습니다. 대회 직전 잉글랜드·프랑스와의 평가전에서 연속으로 골을 넣고 얻은 자리였습니다.
22세에 천황배 결승에서 동점골을 넣어 교토에 구단 첫 우승을 안겼고, 1월 12일 PSV 에인트호번 입단식을 가졌습니다. 23세에는 아테네 올림픽 차출이 소속팀과의 협상 끝에 무산됐습니다. 24세 봄 챔피언스리그 4강 AC밀란전에서 한국 선수로는 처음 이 대회 본선 골을 넣었고, 여름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옮겨 8월에 프리미어리그에 데뷔했습니다.
25세에 독일 월드컵 프랑스전에서 동점골을 넣었습니다. 26세에 맨유의 리그 우승으로 아시아 선수로는 처음 프리미어리그 우승 메달을 받았습니다. 27세에 챔피언스리그와 클럽월드컵을 모두 들었지만,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는 출전 명단에서 빠졌습니다. 28세에는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선발로 나서 아시아 선수로는 처음 그 무대를 밟았습니다.
29세에 남아공 월드컵 그리스전에서 골을 넣어 한국 선수 최초의 월드컵 3개 대회 연속 득점을 기록했습니다. 30세 1월 아시안컵 4강 일본전으로 A매치 100경기를 채우고 대표팀에서 은퇴했으며, 곧이어 사회공헌재단을 세웠습니다. 31세에 맨유를 떠나 퀸즈 파크 레인저스로 옮겼습니다. 32세에는 PSV 에인트호번으로 1년 임대됐습니다.
33세에 무릎 때문에 현역에서 물러났고, 그해 결혼했으며 맨유의 앰배서더가 됐습니다. 35세에 영국 레스터에서 FIFA 마스터 코스를 시작했습니다. 36세에 한국인 최초로 국제축구평의회 자문위원이 됐고, 연말에는 대한축구협회 유스전략본부장을 맡았습니다.
40세에 전북 현대 어드바이저로 K리그에 발을 들였습니다. 41세에는 전북의 테크니컬 디렉터가 됐습니다. 43세에 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을 공개적으로 비판했고, 전북에서는 고문으로 역할이 바뀌었습니다. 45세에 월드컵 해설을 맡았고, 7월에는 K-축구 혁신위원회 공동위원장이 됐습니다.
박지성(1981년 2월 25일생)은 19세이던 2000년 6월 일본 교토 퍼플상가에 입단해 프로에 데뷔했고, 21세이던 2002년 6월 14일 한일월드컵 포르투갈전 결승골로 이름이 알려졌습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는 24세이던 2005년에 입단했습니다.
나이는 연도 기준입니다(그 해 − 출생 연도). 생일 전후를 따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