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에 상지여중을 졸업하면서 아버지의 권유로 바벨을 잡았습니다. 역도만 잘해도 대학에 갈 수 있다는 말이 결정적이었다고 본인은 말합니다. 18세에 원주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원주시청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19세에 처음 태극마크를 달고 부산 아시안게임에 나가 은메달을 받았습니다. 20세에는 밴쿠버 세계선수권 용상에서 동메달을 받아 아테네 올림픽 출전권 확보를 도왔습니다.
이름이 알려진 해21세에 아테네 올림픽 여자 75㎏ 이상급에서 은메달을 받았습니다. 여자 역도가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된 뒤 한국의 첫 여성 메달리스트였습니다.
22세에 카타르 도하에서 세계선수권을 처음 제패했습니다. 23세에 세계선수권 2연패를 이뤘지만 그해 말 도하 아시안게임에서는 은메달에 그쳤습니다. 24세에 고양시청으로 옮겼고, 치앙마이 세계선수권에서 합계 세계신기록으로 3연패를 했습니다.
25세에 베이징 올림픽에서 인상·용상·합계 세 부문 세계신기록으로 금메달을 받았습니다. 26세에는 고양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서 용상 세계신기록과 함께 4연패를 했습니다. 27세에 가을 세계선수권에서 3위에 그친 뒤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첫 금메달을 받았습니다.
29세에 평택 아시아선수권에서 3관왕에 올라 4대 대회를 모두 제패했고, 런던 올림픽에서는 4위에 머물렀습니다. 30세에 15년의 선수 생활을 마쳤습니다. 33세에 용인대 교수가 됐고, 도핑 재조사로 런던 올림픽 동메달을 이어받았습니다.
40세에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이 됐습니다. 41세에 파리 올림픽 개회식에서 한국 선수단이 북한으로 소개되자 IOC 위원장에게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42세에 소장품 88점을 국립스포츠박물관에 기증했고, 차관에서 물러난 뒤 조선일보에 칼럼을 싣기 시작했습니다. 43세에도 칼럼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장미란(1983년 10월 9일생)은 19세이던 2002년 10월 8일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처음 태극마크를 달고 은메달을 받았고, 21세이던 2004년 8월 21일 아테네 올림픽 은메달로 이름이 알려졌습니다. 올림픽 금메달은 25세이던 2008년에 받았습니다.
나이는 연도 기준입니다(그 해 − 출생 연도). 생일 전후를 따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