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에 영주의 극단에 들어가 연극 「리투아니아」로 데뷔했습니다. 재수하던 해에 길에 붙은 단원 모집 공고를 보고 찾아간 극단이었습니다. 23세에 대구 연출가의 권유로 대구 연극판으로 옮겼습니다. 군복무를 뺀 대구 생활은 10년이었습니다.
30세에 연극 「비언소」에 올랐습니다. 경상도 사투리로 연기해 대구 관객이 크게 공감했다고 본인은 말합니다. 31세에 무용을 전공한 아내와 결혼했습니다. 33세에 연극 「돼지사냥」으로 전국연극제 최우수연기상을 받았습니다.
34세에 가족을 대구에 두고 혼자 서울로 올라와 대학로 무대에 섰습니다. 35세에는 연극 「거기」에 나왔습니다. 36세에 MBC 「베스트극장」 단역으로 나온 뒤 드라마 일이 잦아졌고, 영화 「맹부삼천지교」에서는 이름 없는 배역을 맡았습니다.
40세에 KBS 「대왕세종」의 최만리를 연기했습니다. 매일신문은 이때부터 대접이 조금 달라졌다고 적습니다. 42세에 MBC 「파스타」의 설준석으로 시청자 눈에 들었습니다. 43세에는 KBS 「브레인」의 고재학으로 이름 대신 배역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이름이 알려진 해44세에 MBC 「골든타임」에서 처음 주연을 맡았습니다. 데뷔 25년 만이고, 여러 매체가 이 작품을 무명에서 벗어난 때로 적습니다.
45세에 「변호인」이 천만 관객을 넘었습니다. 46세에 tvN 「미생」에서 오상식을 연기했습니다. 47세에 「미생」으로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을 받았습니다. 48세에는 「로봇, 소리」로 처음 스크린 주연을 맡았습니다.
49세에 「보안관」이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습니다. 50세에 「공작」으로 칸 국제영화제 레드카펫에 처음 섰고, 그해 대종상 남우주연상을 받았습니다. 51세에는 같은 영화로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을 받았습니다. 52세에 「남산의 부장들」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모티브로 한 인물을 연기했습니다.
53세에 고향 봉화를 배경으로 한 「기적」에 주연으로 나왔습니다. 54세에 「소년심판」과 「재벌집 막내아들」이 잇따라 나왔습니다. 55세에 「재벌집 막내아들」로 백상 최우수연기상을 다시 받았고 「서울의 봄」이 천만을 넘었습니다. 57세에 「어쩔수가없다」로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을 처음 받았습니다. 58세에는 같은 영화로 백상 남우조연상을 받고 넷플릭스 「참교육」에 출연했습니다.
이성민(1968년 12월 4일생)은 19세이던 1987년 연극 「리투아니아」로 데뷔했고, 44세이던 2012년 7월 9일 MBC 「골든타임」에서 처음 주연을 맡으며 이름이 알려졌습니다. 첫 백상예술대상은 47세이던 2015년에 받았습니다.
나이는 연도 기준입니다(그 해 − 출생 연도). 생일 전후를 따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