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원년 개막전 1호 안타·1호 홈런
동대문구장 MBC 청룡전에 삼성 4번 타자 겸 선발 포수로 나가 1회초 좌익선상 2루타로 1호 안타와 1호 타점을 올렸습니다. 5회초에는 좌측 펜스를 넘기는 솔로 홈런으로 1호 홈런도 기록했습니다.
이름이 알려진 해24세에 프로야구 원년 개막전에 삼성 4번 타자 겸 포수로 나가 1호 안타와 1호 홈런을 쳤습니다.
25세에는 홈런과 타점 타이틀을 가져가 MVP에 뽑혔습니다. 26세에 타율·홈런·타점에서 모두 1위에 오르는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했습니다. 27세까지 3년 연속 홈런왕이었습니다.
28세에 해태 김봉연과 경쟁한 끝에 프로야구 첫 100호 홈런을 쳤습니다. 29세 무렵까지 5년 연속 포수 골든글러브를 받았습니다. 33세 무렵에는 프로야구 처음으로 통산 200홈런을 넘었습니다.
39세에 삼성의 보류선수 명단에서 빠지며 16년간의 프로 생활을 마쳤습니다. 통산 홈런은 252개입니다. 40세에 미국으로 연수를 떠나 클리블랜드 산하 싱글A 팀에서 한국인 최초로 유급코치가 됐습니다. 41세에는 화이트삭스 산하 트리플A 팀에서 활동했습니다. 42세에 화이트삭스 불펜 보조코치로 메이저리그에 올라갔습니다.
46세에 삼성의 등번호 22번이 영구결번이 됐습니다. 47세에 화이트삭스 불펜 보조코치로 월드시리즈 우승을 함께했습니다. 48세에 SK 와이번스 수석코치를 맡아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49세에 SK 수석코치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뤘습니다.
53세에 SK 감독대행을 맡았고, 한국시리즈 준우승 뒤 정식 감독이 됐습니다. 54세에 감독 첫 시즌 한국시리즈에서 다시 준우승했습니다. 56세에 SK 감독에서 물러났고, 그해 11월 라오스에서 야구 보급을 시작했습니다.
57세에는 KBO 육성위원회 부위원장과 해설위원을 맡기로 했습니다. 59세에 라오스야구협회 창립을 지원했습니다. 60세에는 라오스 대표팀을 이끌고 아시안게임에 처음 나갔습니다.
62세에 베트남 야구협회 설립을 돕겠다고 나섰습니다. 65세에 라오스 야구가 아시안게임 첫 승리를 거뒀고, 이듬해 베트남으로 간다고 밝혔습니다. 66세에 대구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시포를 했습니다. 67세에는 이만수 포수·홈런상 제9회 시상식을 열었습니다. 68세에 캄보디아 프놈펜의 야구장 건립을 논의했습니다.
이만수(1958년 9월 19일생)는 24세이던 1982년 3월 27일 삼성 라이온즈 소속으로 프로야구 원년 개막전에 나가 1호 안타와 1호 홈런을 쳤고, 이 경기로 이름이 알려졌습니다. 26세이던 1984년에는 타율·홈런·타점 1위인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했습니다.
나이는 연도 기준입니다(그 해 − 출생 연도). 생일 전후를 따지지 않습니다.
동대문구장 MBC 청룡전에 삼성 4번 타자 겸 선발 포수로 나가 1회초 좌익선상 2루타로 1호 안타와 1호 타점을 올렸습니다. 5회초에는 좌측 펜스를 넘기는 솔로 홈런으로 1호 홈런도 기록했습니다.
홈런과 타점 타이틀을 가져갔고 정규시즌 MVP에 뽑혔습니다.
출처 01 · 연합뉴스 · 프로야구의 산증인 이만수 · 새 창출처 07 · OSEN · 이만수 이사장의 쓴소리 · 새 창타율, 홈런, 타점 부문에서 모두 1위에 올랐습니다. 연합뉴스는 1997년 기사에서 지금까지도 유일한 트리플크라운이라고 썼습니다.
출처 01 · 연합뉴스 · 프로야구의 산증인 이만수 · 새 창출처 04 · 문화일보 · 이대호 타격 3관왕 · 새 창1983년부터 3년 연속 홈런왕이었습니다. 이 해 삼성은 전·후기 통합 1위로 한국시리즈 없이 우승했습니다.
출처 02 · 스포츠조선 · 냉정과 열정 사이 · 새 창출처 05 · 뉴시안 · 프로야구 44시즌 돌아보기 · 새 창빙그레전에서 프로야구 첫 개인 통산 100번째 홈런을 쳤습니다. 해태 김봉연과 100홈런을 먼저 치려고 경쟁하던 중이었습니다.
출처 06 · 일간스포츠 · KBO리그 40년 The moment · 새 창1983년부터 5년 연속으로 포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받았습니다.
출처 07 · OSEN · 이만수 이사장의 쓴소리 · 새 창 기사에는 1983년부터 5년 연속이라고만 있어 마지막 해를 1987년으로 계산했습니다.프로야구에서 처음으로 통산 200홈런을 넘었습니다. 두 번째는 1995년 4월 18일 해태 김성한이었습니다.
출처 08 · 연합뉴스 · 쌍방울 3연승 · 새 창 달성한 날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삼성이 제출한 보류선수 명단에서 빠지며 16년간의 프로 생활을 마쳤습니다. 통산 1,449경기에서 타율 0.296, 홈런 252개를 쳤습니다.
출처 03 · 연합뉴스 · 유일한 원년멤버 이만수 은퇴 · 새 창출처 01 · 연합뉴스 · 프로야구의 산증인 이만수 · 새 창 연합뉴스는 25일 삼성이 명단을 제출했다고 쓰고, 다른 기사는 26일 KBO가 공시한 명단이라고 씁니다.미국으로 연수를 떠나 클리블랜드 산하 싱글A 팀에서 한국인 최초로 유급코치가 됐습니다.
출처 09 · 동아일보 · 이만수 코치 ML 1일 선수 · 새 창시카고 화이트삭스 산하 트리플A 팀에서 활동했습니다.
출처 09 · 동아일보 · 이만수 코치 ML 1일 선수 · 새 창이 해 화이트삭스 불펜 보조코치로 메이저리그에 올라갔습니다. 31일 애너하임전에서 포수 엔트리에 결원이 생기자 만일에 대비해 1일 선수로 등록됐고, 동아일보는 이를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그 타자라고 썼습니다.
출처 09 · 동아일보 · 이만수 코치 ML 1일 선수 · 새 창삼성은 그의 등번호 22번을 영구결번으로 정했습니다. 프로야구의 영구결번 가운데 하나입니다.
출처 10 · MBC SPORTS+ · 카일과 휴스턴의 두 영구결번 · 새 창 6월 23일 기사에 얼마 전 영구결번식을 가졌다고 나와 있고, 정확한 날짜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화이트삭스가 휴스턴을 4전 전승으로 꺾고 88년 만에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했을 때 불펜 보조코치로 있었습니다.
출처 11 · OSEN · 화이트삭스 우승 뒤에는 이만수 코치도 · 새 창출처 12 · 연합뉴스 · 이만수 코치 이승엽 메이저리그 전망 · 새 창 날짜는 한국시간이며 현지 시각으로는 26일입니다.김성근 감독 체제의 SK 수석코치를 맡아 한국 프로야구로 돌아왔습니다.
출처 13 · 마이데일리 · 감독 선임 스토브리그 · 새 창출처 14 · OSEN · SK 새 코치진 · 새 창 마이데일리는 10월 초 체제를 확정했다고 씁니다. 정확한 날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두산과의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SK가 이기며 우승을 확정했습니다. 선수 시절에는 한국시리즈에 6번 올랐지만 우승하지 못했고, 7번째 도전에서 코치로 우승했습니다.
출처 15 · 뉴시스 · 우승 세레모니 하는 이만수 코치 · 새 창출처 16 · 마이데일리 · 숫자 1~10으로 정리한 SK-두산 한국시리즈 · 새 창SK가 김성근 감독을 경질하면서 2군 감독이던 이만수를 감독대행으로 선임했습니다.
출처 17 · 스포츠조선 · SK 이만수 감독대행 체제로 · 새 창감독대행으로 팀을 한국시리즈에 올린 뒤 3년 총액 10억 원에 제4대 감독이 됐습니다. 그해 한국시리즈는 준우승이었습니다.
출처 18 · 스포츠조선 · 이만수 3년 10억원 정식 감독 계약 · 새 창출처 19 · 스포츠조선 · SK 이만수 감독 지도력 검증 · 새 창정규시즌 2위로 한국시리즈에 올라 6차전에서 0대7로 졌습니다. 2년 연속 준우승이었습니다.
출처 19 · 스포츠조선 · SK 이만수 감독 지도력 검증 · 새 창출처 20 · 머니투데이 · 이만수 감독 한국시리즈 진출도 기적 · 새 창SK는 정규시즌 5위로 2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오르지 못했고, 재계약 대신 김용희 육성총괄을 제5대 감독으로 임명했습니다.
출처 21 · 이투데이 · SK 이만수 감독과 결별 · 새 창SK 감독에서 물러난 뒤 라오스에서 야구 보급을 시작했습니다. 본인은 2014년 11월 라오스에 도착했다고 말합니다.
출처 22 · 연합뉴스 · 라오스 야구 아시안게임 태국전 · 새 창출처 30 · 재외동포신문 · 캄보디아 프놈펜에 야구장 건립 추진 · 새 창KBO 육성위원회 부위원장 제안을 받아들였고, MBC스포츠플러스와 객원 해설위원 계약을 맺었습니다.
출처 23 · 스포츠동아 · 현장 떠난 뒤 더 바쁜 남자 이만수 · 새 창 2월 19일자 기사 기준이며 계약일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헐크파운데이션 이사장으로서 라오스야구협회 창립을 지원했습니다.
출처 24 · 일요시사 · 이만수 감독의 헐크파운데이션 · 새 창 창립 총회의 날짜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라오스야구협회 부회장으로 대표팀을 이끌고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나갔습니다. 자격예선 1차전에서 태국에 0-15, 6회 콜드게임으로 졌습니다.
출처 22 · 연합뉴스 · 라오스 야구 아시안게임 태국전 · 새 창한국인들이 주축인 지원단이 베트남 정부로부터 야구협회 설립을 승인받았고, 도움을 요청받은 이만수가 이를 수락했습니다.
출처 25 · 스포츠동아 · 이만수 베트남 야구협회 설립에 힘 보태 · 새 창라오스가 싱가포르를 8대7로 꺾고 아시안게임 첫 승리를 거뒀습니다. 이만수는 대표팀 스태프 총책임자로 참가했고, 10월 20일 약속대로 선수들과 비엔티안 대통령궁 앞을 달렸습니다.
출처 26 · SBS · 라오스 야구 아시안게임 첫 승 기념 세리머니 · 새 창2024년에는 베트남으로 가서 야구를 보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출처 27 · OSEN · 베트남으로 가는 이만수 · 새 창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삼성과 KIA의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김시진의 시구를 받는 시포자로 나왔습니다.
출처 28 · 뉴시스 · 김시진·이만수 KS 3차전 시구·시포 · 새 창고교 포수와 홈런 타자에게 주는 이만수 포수상·홈런상을 KBO 사옥에서 시상했습니다.
출처 29 · 연합뉴스 · 제9회 이만수 포수·홈런상 · 새 창프놈펜에 정식 야구장을 짓고 청소년 야구단을 만드는 일을 논의하러 캄보디아를 찾았습니다.
출처 30 · 재외동포신문 · 캄보디아 프놈펜에 야구장 건립 추진 · 새 창END OF SELECTED RECORDS1982–2026 주요 기록 발췌 · 전체 활동 목록은 아닙니다. ‘주요 기록’ 표시는 편집상의 구분이며, 성공을 정의하는 기준은 아닙니다.
그 사람은 몇 살에 무엇을 했을까.
AgeTrail은 인물의 주요 사건을 나이 순으로 정리합니다.
데뷔와 이름이 알려진 해를 구분하고, 기록마다 출처를 남깁니다.
스포츠 · 대한민국
1958. 09. 19. —
출생 연도 1958년을 기준으로 사건이 일어난 해의 나이(그 해 − 출생 연도)를 계산했습니다. 생일 전후는 따지지 않습니다. ‘주요 기록’ 표시와 연결 문장은 AgeTrail의 편집적 해석입니다.
사실 확인: 2026.10.03 · 인물 및 소속사와 관계없는 독립 아카이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