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으로 바둑 유학
6세에 삼촌 조남철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기타니 미노루 9단의 제자로 들어갔습니다. 열다섯 살 위 형 조상연이 보호자로 함께 지내며 뒷바라지했습니다.
출처 02 · 경향신문 · 어제의 오늘 1980년 명인 타이틀 획득 · 새 창출처 03 · 일요신문 · 형 조상연 인터뷰 · 새 창출처 07 · 레디앙 · 혼인보의 탄생과 조치훈 · 새 창6세에 삼촌 조남철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기타니 미노루 9단의 제자로 들어갔습니다. 12세에 일본기원에 입단했습니다. 11세 9개월이라는 최연소 기록이었습니다. 19세에 프로 바둑10걸전에서 가토 마사오를 꺾고 최연소자로 일본 바둑 정상에 올랐습니다.
이름이 알려진 해24세에 명인 타이틀을 차지하며 이름이 알려졌습니다. 한국 사회는 이 우승에서 극일을 느꼈다고 스포츠경향은 돌아봤습니다.
25세에 혼인보 타이틀까지 차지했습니다. 27세에 기성 타이틀까지 더해 대삼관을 사상 처음으로 이뤘습니다. 몇 달 뒤 혼인보 방어전에서는 린하이펑에게 내줬습니다. 30세이던 1월, 교통사고로 다친 몸을 휠체어에 의지한 채 기성전 제2국에 나와 이겼습니다. 다만 방어전 전체는 고바야시 고이치에게 내줬습니다.
31세에 천원전까지 우승해 일본 바둑 7대 기전을 모두 차지하는 그랜드슬램을 이뤘습니다. 33세에 혼인보를 6년 만에 되찾았습니다. 35세에 후지쯔배에서 우승해 처음으로 세계대회 정상에 올랐습니다.
42세에 본인방을 10연패해 ‘25대 혼인보 치쿤’ 칭호를 받았습니다. 같은 시기 대삼관도 3년 연속, 통산 네 번째로 이뤘습니다. 43세에 통산 1000승을 채웠습니다.
47세에 삼성화재배에서 우승해 12년 만에 다시 세계대회 정상에 올랐습니다. 52세에 통산 1300승을 채웠습니다. 54세에 일본 바둑 통산 최다승 기록을 새로 썼습니다. 56세에 일본 바둑 사상 처음으로 통산 1400승을 채웠습니다.
59세이던 7월 바둑마스터즈컵에서 우승해 통산 74회 우승을 채웠습니다. 8월에는 부인과 사별했습니다. 60세 생일에 명예명인 칭호를 받았습니다. 61세에 일본 바둑계에서 처음으로 통산 1500승을 채웠습니다. 62세에 한국 바둑대회에서 처음으로 우승했습니다.
63세에 일본 정부로부터 자수포장을 받았습니다. 64세에 한국 시니어바둑리그에서 3년 연속 MVP를 받았습니다. 67세에 일본 프로바둑 사상 최다승인 통산 1600승을 채웠습니다. 68세에 한국 국적을 지켜온 이유를 언론 인터뷰에서 밝혔습니다. 70세에 첫 자전 에세이 「바둑과 살다」를 냈습니다.
조치훈(1956년 6월 20일생)은 12세이던 1968년 5월 8일 일본기원에 입단했고, 24세이던 1980년 11월 5일 명인 타이틀을 차지하며 이름이 알려졌습니다. 본인방을 10연패해 ‘25대 혼인보 치쿤’ 칭호를 받은 것은 42세이던 1998년입니다.
나이는 연도 기준입니다(그 해 − 출생 연도). 생일 전후를 따지지 않습니다.
6세에 삼촌 조남철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기타니 미노루 9단의 제자로 들어갔습니다. 열다섯 살 위 형 조상연이 보호자로 함께 지내며 뒷바라지했습니다.
출처 02 · 경향신문 · 어제의 오늘 1980년 명인 타이틀 획득 · 새 창출처 03 · 일요신문 · 형 조상연 인터뷰 · 새 창출처 07 · 레디앙 · 혼인보의 탄생과 조치훈 · 새 창11세 9개월에 일본기원에 입단해 당시 최연소 기록을 세웠습니다. 5월 8일 첫 대국에서 이구치 세이지에게 백으로 불계승을 거뒀습니다.
출처 01 · 뉴스타운 · 일본 바둑 사상 최초 1400승 · 새 창일본 아사히신문사 주최 제12회 프로 바둑10걸전 결승 5번기에서 가토 마사오를 상대로 3연승해 최연소자로 일본 바둑 정상에 올랐습니다. 제3국은 188수 만의 불계승이었습니다.
출처 12 · 충청일보 · 1975년 5월 3일자 지면 재수록 · 새 창제4기 명인전 제6국에서 오다케 히데오 명인을 한 집 반 차로 이겨 7판 승부에서 먼저 4판을 이기고 명인 타이틀을 차지했습니다. 이후 1984년까지 명인전을 5년 연속 지켰습니다. 경향신문은 세계 최강이던 일본 바둑 타이틀을 한국인이 차지한 것이라고 적었고, 스포츠경향은 당시 한국 사회가 이 우승에서 극일을 느꼈다고 돌아봤습니다. 우승 직후 일시 귀국해 한국 전관왕이던 조훈현과 기념 대국 두 판을 모두 이겼다고 뉴스메이커는 전했습니다.
기성·명인에 이어 혼인보까지 처음으로 차지했습니다.
출처 07 · 레디앙 · 혼인보의 탄생과 조치훈 · 새 창 날짜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기성 타이틀까지 손에 넣어 명인·기성·혼인보를 동시에 보유하는 대삼관을 사상 처음으로 이뤘습니다. 몇 달 뒤 혼인보 방어전에서는 3연승 뒤 내리 4연패해 린하이펑에게 타이틀을 내줬습니다.
출처 07 · 레디앙 · 혼인보의 탄생과 조치훈 · 새 창출처 10 · 뉴시스 · 일본바둑 사상 2번째 명예명인 · 새 창 날짜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기성 방어전을 열흘 앞두고 교통사고를 당해 전치 3개월의 부상을 입었습니다. 일본 시마네현 마쓰에시에서 열린 기성전 제2국에 휠체어를 타고 나와 도전자 고바야시 고이치를 3집 반 차로 이겼습니다. 다만 체력을 회복하지 못해 방어전 전체는 고바야시에게 내줬습니다.
출처 04 · 아시아경제 · 수담, 조치훈 투혼 · 새 창출처 05 · 국민일보 · 한국 바둑사 명대국 명장면, 휠체어 대국 · 새 창남아 있던 천원전까지 우승해 일본 바둑 7대 기전을 모두 한 차례 이상 차지했습니다. 한게임바둑은 이를 그랜드슬램이라고 적었습니다.
출처 13 · 한게임바둑 · 조치훈 9단, 일본 최다 75번째 타이틀 · 새 창출처 10 · 뉴시스 · 일본바둑 사상 2번째 명예명인 · 새 창 날짜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6년 만에 혼인보 타이틀을 되찾았습니다. 이후 1998년까지 한 번도 내주지 않았습니다.
출처 07 · 레디앙 · 혼인보의 탄생과 조치훈 · 새 창출처 06 · 인천투데이 · 오늘의 역사, 본인방 10연패 · 새 창 월일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제4회 후지쯔배에서 우승해 처음으로 세계대회 정상에 올랐습니다.
출처 16 · 한게임바둑 · 조치훈 우승, 일본 기록 74회로 경신 · 새 창 날짜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일본 이바라키현 후쿠로다 온천호텔에서 열린 제53기 본인방전 제6국에서 도전자 왕리청 9단을 4승 2패로 꺾고 본인방 10연패를 채웠습니다. 1952~1960년 다카가와 가쿠가 세운 9연패를 넘어선 일본 메이저 타이틀 최장 기록이라고 인천투데이는 적었습니다. 이 위업으로 ‘25대 혼인보 치쿤’ 칭호를 받았습니다. 1996년부터는 명인·기성·본인방을 함께 갖는 대삼관도 3년 연속, 통산 네 번째로 이뤘습니다.
출처 06 · 인천투데이 · 오늘의 역사, 본인방 10연패 · 새 창출처 07 · 레디앙 · 혼인보의 탄생과 조치훈 · 새 창제38기 십단전 본선에서 야마다 기미오 9단에게 불계승을 거두며 통산 1000승을 채웠습니다.
출처 01 · 뉴스타운 · 일본 바둑 사상 최초 1400승 · 새 창 날짜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와일드카드로 출전한 제8회 삼성화재배 결승에서 박영훈 9단을 꺾고 우승했습니다. 1991년 후지쯔배 이후 12년 만의 세계대회 우승이자 47세 우승입니다.
출처 16 · 한게임바둑 · 조치훈 우승, 일본 기록 74회로 경신 · 새 창출처 17 · 쿠키뉴스 · 삼성화재배 30년사, 이세돌 4회 우승 · 새 창출처 22 · 한국일보 · 박정환 9단, 누적 상금 108억 · 새 창 결승 날짜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제33기 기성전 본선리그에서 왕리청 9단에게 불계승을 거두며 통산 1300승을 채웠습니다.
출처 01 · 뉴스타운 · 일본 바둑 사상 최초 1400승 · 새 창 날짜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제59기 왕좌전 예선에서 린한채 7단에게 이겨 통산 1364승으로 린하이펑의 일본 최다승 기록을 넘어섰습니다.
출처 01 · 뉴스타운 · 일본 바둑 사상 최초 1400승 · 새 창예선 A조에서 고마쓰 히데끼 9단에게 3집 반 승리를 거두며 일본 바둑 사상 처음으로 통산 1400승을 채웠습니다. 입단 44년 만입니다.
출처 01 · 뉴스타운 · 일본 바둑 사상 최초 1400승 · 새 창제5회 바둑마스터즈컵 결승에서 다케미야 마사키 9단을 상대로 272수 만에 5집 반 차로 이겼습니다. 일본 바둑 통산 최다 우승 기록을 74회로 늘렸습니다.
출처 16 · 한게임바둑 · 조치훈 우승, 일본 기록 74회로 경신 · 새 창부인이 일본 지바현 자택에서 세상을 떠나 조용히 가족장을 치렀습니다. 나흘 뒤 일본기원을 통해 부고를 알렸습니다.
출처 19 · 연합뉴스 · 조치훈 9단 부인상 · 새 창규정에 따라 60세 생일을 맞은 날 명예명인 칭호를 받았습니다. 1980년부터 1984년까지 명인전을 5연패한 것이 기준이 됐습니다. 일본 바둑계에서는 2012년 고바야시 고이치에 이어 두 번째입니다.
출처 10 · 뉴시스 · 일본바둑 사상 2번째 명예명인 · 새 창출처 24 · 일요신문 · 조치훈 일본 바둑 명예 명인 등극 · 새 창제7회 마스터스컵 2회전에서 가타오카 사토시 9단에게 백으로 불계승을 거두며 일본 바둑계에서 처음으로 통산 1500승을 채웠습니다. 입단 49년 만입니다.
출처 08 · 한겨레 · 조치훈, 일본 바둑 첫 1500승 · 새 창경기 성남 K바둑스튜디오에서 열린 제5기 대주배 남녀 프로시니어 최강자전 결승에서 조혜연 9단에게 200수 만에 백으로 불계승을 거뒀습니다. 한국 바둑대회에서 거둔 첫 우승입니다.
출처 18 · 스포츠서울 · 조치훈 9단, 국내 바둑대회 첫 우승 · 새 창일본 정부로부터 학술·연구·예술 분야 공로자에게 주는 자수포장을 받았습니다.
출처 14 · 뉴시스 · 조치훈, 일본 포장 수상자로 선정 · 새 창출처 09 · 아시아경제 · 조치훈, 한국 국적을 지켜온 이유 · 새 창주장을 맡은 부산KH에너지의 2019 NH농협은행 시니어바둑리그 정규리그 11전 전승을 이끌어 2017년부터 3년 연속 MVP를 받았습니다.
출처 15 · 부산일보 · 3년 연속 시니어바둑리그 MVP · 새 창일본기원이 발표한 기록으로, 일본 프로바둑 사상 최다승인 통산 1600승을 채웠습니다.
출처 11 · 동아일보 · 일본바둑 사상 최다 1600승 · 새 창니혼게이자이신문 연재 칼럼에서 여러 차례 귀화를 권유받았지만 한국 국적을 지켜왔다고 밝혔습니다. 세상을 떠난 부인과 자녀는 일본 국적이라고 말했습니다.
출처 09 · 아시아경제 · 조치훈, 한국 국적을 지켜온 이유 · 새 창 칼럼 게재일은 확인하지 못했고, 날짜는 기사 게재일입니다.첫 자전 에세이 「바둑과 살다」를 펴냈다고 한국기원이 밝혔습니다. 평생 라이벌인 고바야시 고이치 9단과의 대담과 자신의 대국 10국에 대한 복기를 담았습니다.
출처 23 · 연합뉴스 · 조치훈 9단, 자전 에세이 「바둑과 살다」 출간 · 새 창END OF SELECTED RECORDS1962–2026 주요 기록 발췌 · 전체 활동 목록은 아닙니다. ‘주요 기록’ 표시는 편집상의 구분이며, 성공을 정의하는 기준은 아닙니다.
그 사람은 몇 살에 무엇을 했을까.
AgeTrail은 인물의 주요 사건을 나이 순으로 정리합니다.
데뷔와 이름이 알려진 해를 구분하고, 기록마다 출처를 남깁니다.
스포츠 · 대한민국
1956. 06. 20. —
출생 연도 1956년을 기준으로 사건이 일어난 해의 나이(그 해 − 출생 연도)를 계산했습니다. 생일 전후는 따지지 않습니다. ‘주요 기록’ 표시와 연결 문장은 AgeTrail의 편집적 해석입니다.
사실 확인: 2026.09.28 · 인물 및 소속사와 관계없는 독립 아카이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