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에 경남고 2학년으로 전국우수고교초청대회에서 경북고를 상대로 노히트노런을 기록했습니다.
이름이 알려진 해18세에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승자결승에서 군산상고를 상대로 탈삼진 20개를 잡았습니다. 전국대회 최다 탈삼진 기록이었습니다.
23세에 연세대를 거쳐 실업야구 롯데에 입단해 17승 1패로 3관왕에 올랐고, 9월에는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메이저리그 입단 계약을 맺었습니다. 병역 문제로 한국에 남았습니다. 24세에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 국가대표로 나갔고 한국이 우승했습니다. 25세에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해 프로에 들어섰습니다. 첫 시즌은 9승 16패였습니다.
26세에 27승 13패 6세이브로 정규시즌 MVP가 됐고, 삼성과의 한국시리즈에서 혼자 4승을 올려 롯데의 첫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27세에 20승을 올렸고 1987년까지 롯데의 에이스로 던졌습니다. 29세 5월에는 해태 선동열과 연장 15회 완투 맞대결을 벌여 2-2로 비겼습니다.
30세에 프로야구 선수회 창립을 주도해 초대 회장이 됐지만, 그해 11월 삼성으로 트레이드됐습니다. 31세에는 후반기부터 삼성에서 던져 1승 2패를 기록했습니다. 32세에 현역에서 물러났습니다. 통산 103승 74패 26세이브였습니다.
35세에 야구 해설을 맡아 두 해를 보냈습니다. 37세에는 코치 복귀를 시도했지만 구단들이 받아주지 않았고, 방송에 출연하기 시작했습니다. 42세 11월에 한화 이글스 투수코치로 영입돼 은퇴 10년 만에 지도자로 돌아왔습니다.
46세 10월에 한화와 1년 계약을 맺고 3년 만에 코치로 돌아왔습니다. 47세에는 2군 투수코치에서 1군 투수코치가 됐습니다. 48세부터 3년 동안 한화 2군 감독을 맡았습니다. 51세에 KBO 경기운영위원으로 활동했습니다.
53세이던 9월 14일 별세했습니다. 9월 30일 롯데는 등번호 11번을 구단 최초로 영구결번했습니다. 사직구장 앞 광장에서 기념 동상 제막식이 열렸습니다. 11월 11일 제1회 최동원상 시상식이 열렸습니다. KBO 리그 40주년 레전드 40인 투표에서 2위에 올랐습니다.
13주기 추모 행사가 사직야구장에서 열렸습니다. 14주기에는 롯데가 사직 홈경기에서 메모리얼 데이를 열었습니다. 15주기 메모리얼 데이가 9월 11일 사직야구장에서 열렸습니다.
최동원(1958년 5월 24일생)은 18세이던 1976년 6월 18일 청룡기 승자결승에서 군산상고를 상대로 탈삼진 20개를 잡으며 이름이 알려졌고, 25세이던 1983년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했습니다. 26세이던 1984년에는 한국시리즈에서 혼자 4승을 올렸고, 2011년 9월 14일 별세했습니다.
나이는 연도 기준입니다(그 해 − 출생 연도). 생일 전후를 따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