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세에 김기영 감독의 「황혼열차」로 아역 데뷔했습니다.
이름이 알려진 해6세에는 충무로에 ‘천재소년’이 나타났다는 평을 들으며 한 해에만 여러 편의 영화에 출연했습니다.
8세에 「십대의 반항」으로 문교부 우수국산영화상 소년연기상과 샌프란시스코영화제 소년특별연기상을 받았습니다. 13세에 「얄개전」에서 문제아 두수 역을 맡아 아역배우 시절의 대표작을 남겼습니다. 16세에 「젊은 느티나무」를 끝으로 아역 활동을 접었습니다. 18세에 한국외국어대학교 베트남어과에 입학했습니다.
24세에 「병사와 아가씨들」 출연을 확정하며 성인 배우로 돌아왔습니다. 28세에 「바람불어 좋은 날」에서 중국집 배달부 덕배 역을 맡아 성인 배우로 본격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29세에는 「만다라」에서 구도승 법운 역으로 백상예술대상 연기상을 받았습니다.
31세에 동서식품 맥심의 광고 모델이 됐고, 「안개마을」로 대종상·백상예술대상을 함께 받았습니다. 33세에 「깊고 푸른 밤」으로 다시 대종상·백상예술대상을 함께 받았습니다. 같은 해 5월에는 명동성당에서 결혼했습니다.
38세에 「남부군」의 종군기자 이태 역으로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받았습니다. 40세에는 「하얀 전쟁」의 베트남전 참전 용사 역으로 아시아태평양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았습니다. 41세에 「투캅스」에서 박중훈과 버디 연기를 했고, 5월에는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친선대사로 위촉됐습니다. 42세에 「태백산맥」과 「투캅스」로 같은 해 백상예술대상과 대종상영화제에서 함께 상을 받았습니다.
43세에 「씨네21」 창간호 표지에 나왔고, 이 매체가 붙인 ‘국민배우’라는 별칭이 자리잡았습니다. 48세에 스크린쿼터 수호천사단 단장을 맡았습니다. 49세에는 「무사」의 진립 역으로 처음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을 받았습니다. 51세에 「실미도」의 최재현 준위 역을 맡아 한국 영화 최초로 1000만 관객을 넘겼습니다.
54세 7월 연기 50주년을 맞아 대종상영화제 영화발전특별공로상을 받았고, 스크린쿼터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았습니다. 12월에는 「라디오 스타」의 매니저 박민수 역으로 박중훈과 함께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공동 수상했습니다. 55세에 같은 작품으로 대종상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았고,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화려한 휴가」에서 시민군에 합류하는 퇴역 장교를 연기했습니다. 58세 12월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장에 취임했습니다.
60세 1월 「부러진 화살」에 출연해 260만 명 넘는 관객을 모았고, 이 연기로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을 받았습니다. 62세에 임권택 감독과 다시 만난 「화장」에 출연했습니다. 66세에는 「화장」의 촬영 현장을 다룬 다큐멘터리 「백두 번째 구름」에 나왔습니다. 67세에 암 진단을 받고 투병을 시작했습니다. 70세에는 투병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촬영한 「카시오페아」 「한산: 용의 출현」 「탄생」 세 편이 개봉했습니다. 71세에 선보인 「노량: 죽음의 바다」가 마지막 작품이 됐습니다. 72세에 대한민국예술원 영화분과 회원으로 선출됐습니다. 74세이던 1월 5일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별세했습니다.
안성기(1952년 1월 1일생)은 5세이던 1957년 「황혼열차」로 아역 데뷔했고, 6세이던 1958년 충무로에 ‘천재소년’이 나타났다는 평을 들으며 이름이 알려졌습니다. 1960년에는 「십대의 반항」으로 소년연기상을 받았습니다. 51세이던 2003년에는 「실미도」로 한국 영화 최초의 1000만 관객을 넘겼습니다.
나이는 연도 기준입니다(그 해 − 출생 연도). 생일 전후를 따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