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에 서울대 사범대 국어과에 들어갔으나 한 학기를 채우지 못하고 고향으로 내려갔습니다. 22세에 사법시험에 도전하겠다며 학교를 그만뒀습니다.
29세에 대구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나자레를 아십니까」가 뽑혔습니다. 30세부터는 매일신문 기자로 일했습니다.
이름이 알려진 해31세에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 「새하곡」이 당선됐고, 같은 해 「사람의 아들」로 오늘의 작가상을 받으며 이름이 알려졌습니다. 등단 2년 만입니다.
33세에 장편 「젊은 날의 초상」을 냈습니다. 34세에 「금시조」로 동인문학상을 받았습니다. 36세에 장편 「영웅시대」를 냈습니다. 39세에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으로 이상문학상 대상을 받았습니다. 40세에 평역 「삼국지」를 냈습니다.
44세에 현대문학상과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을 받았습니다. 46세에 세종대 교수가 됐습니다. 49세에 장편 「선택」을 냈습니다. 50세에 이천에 부악문원을 세우고 대하소설 「변경」 12권을 완간했습니다. 51세에 「변경」으로 호암예술상을 받았습니다.
53세에는 그의 칼럼에 반대하는 이들이 부악문원에서 책 장례식을 치렀습니다. 55세에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을 맡았습니다. 57세 끝에 미국 버클리로 떠났습니다. 60세에 「초한지」 10권을 완간했습니다.
61세에 한국외대 석좌교수가 됐고 대한민국예술원상을 받았습니다. 64세에 「리투아니아 여인」으로 동리문학상 수상자에 선정됐습니다. 67세에 은관문화훈장을 받았습니다. 68세에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이사장에 임명됐습니다. 71세에 40년을 함께한 민음사와 계약을 해지했습니다.
72세에 「삼국지」를 시작으로 개정판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74세에는 영양 두들마을의 광산문우가 불에 탔습니다. 76세에 개정판 67권을 완간하고 금관문화훈장을 받았습니다. 77세에 김문수 대선 캠프의 명예선대위원장을 맡았습니다.
이문열(1948년 6월 24일생)은 29세이던 1977년 대구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나자레를 아십니까」가 뽑히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31세이던 197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 「새하곡」이 당선됐고, 같은 해 「사람의 아들」로 오늘의 작가상을 받으며 이름이 알려졌습니다.
나이는 연도 기준입니다(그 해 − 출생 연도). 생일 전후를 따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