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세 무렵 세종대 미대를 중퇴하고 합동영화사 선전부에서 영화 광고를 만들었습니다. 「변강쇠」 신문광고 디자인이 시작이었습니다. 34세에 영화사 씨네월드를 세우고, 연출을 맡겠다는 사람이 없어 창립작 「키드캅」의 감독을 직접 맡았습니다. 44세에 퓨전 역사 코미디 「황산벌」로 10년 만에 연출로 돌아왔습니다.
이름이 알려진 해46세에 「왕의 남자」를 내놓았습니다. 전국 287개 관에서 개봉해 첫날 29만 명이 봤습니다.
47세가 된 2006년 2월 이 영화는 1000만 관객을 넘었고, 3월에는 한국 영화 역대 흥행 1위에 올랐습니다. 4월에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대상을 받았고 9월에는 「라디오 스타」를 개봉했습니다. 48세에 내놓은 「즐거운 인생」의 전국 관객은 126만 명이었습니다. 49세에는 순제작비 70억 원을 들인 「님은 먼곳에」를 개봉했습니다. 51세에 개봉한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까지 세 작품 연속으로 흥행에 실패했습니다.
52세에 「평양성」이 흥행에 실패하면 상업영화를 그만두겠다고 밝혔고, 이튿날 영화가 개봉했습니다. 54세에 「소원」으로 2년 만에 돌아왔습니다. 56세에는 「왕의 남자」 이후 두 번째 사극 「사도」를 개봉했습니다.
57세에 순제작비 6억 원짜리 흑백영화 「동주」를 내놓았고, 그해 6월 「사도」와 「동주」로 두 번째 백상 영화부문 대상을 받았습니다. 58세에 「박열」을 개봉했습니다. 59세에 「변산」을 개봉했습니다. 60세 10월에 두 번째 흑백영화 「자산어보」의 촬영을 마쳤습니다.
62세에 「자산어보」를 개봉했고, 5월에는 이 영화로 세 번째 백상 영화부문 대상을 받았습니다. 63세에 티빙 「욘더」로 처음 드라마를 연출했습니다. 64세에는 데뷔 30주년을 맞아 춘천영화제가 대표작 세 편을 특별 상영했습니다.
66세에 「자산어보」 이후 4년 만이 되는 새 사극에 투자가 확정됐습니다. 67세에 숏 드라마로 찍은 세로 화면 영화 「아버지의 집밥」을 극장에 걸었고, 장편 「나는 반딧불이」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준익(1959년 9월 21일생)은 34세이던 1993년 7월 17일 「키드캅」으로 감독 데뷔했고, 46세이던 2005년 12월 29일 개봉한 「왕의 남자」로 이름이 알려졌습니다. 이 영화는 2006년 한국 영화 역대 흥행 1위에 올랐습니다.
나이는 연도 기준입니다(그 해 − 출생 연도). 생일 전후를 따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