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세에 이화콩쿠르 바이올린 부문에서 1위를 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서울시립교향악단과 멘델스존 협주곡을 연주했습니다. 13세에 미국 줄리아드 음악원에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해 이반 갈라미언에게 배웠습니다.
이름이 알려진 해19세에 뉴욕 카네기홀에서 열린 레벤트리트 콩쿠르에서 핀커스 주커만과 공동 1위에 올랐습니다. 줄리아드 입학 6년 만이고, 세계일보와 국민일보는 이 우승으로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고 적습니다.
22세에 이츠하크 펄먼을 대신해 런던심포니와 차이콥스키 협주곡을 협연했고, 이 공연 뒤 데카에서 첫 음반을 녹음했습니다. 25세에 스트라빈스키·월튼 협주곡 음반으로 에디슨상을 받았습니다. 34세에는 정명화·정명훈과 함께 정트리오로 카네기홀에 섰습니다. 36세에 결혼했고 이 무렵 터전을 유럽에서 미국으로 옮겼습니다.
40세에 데카를 떠나 EMI의 전속 아티스트가 됐습니다. 46세에 바르토크 바이올린 협주곡 앨범으로 그라모폰상을 받았습니다. 47세에는 아시아위크의 「위대한 아시아인 20인」에 클래식 연주자로는 유일하게 들었습니다. 49세에 세계 무대 데뷔 30주년 페스티벌을 한국과 영국에서 열었습니다.
53세에 사이먼 래틀이 지휘하는 빈필하모닉과 브람스 협주곡 음반을 냈습니다. 57세이던 해 9월 왼손 손가락을 다쳐 연주를 중단했습니다. 59세에 모교 줄리아드 음악원의 교수가 됐습니다.
62세에 예술의전당에서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브람스 협주곡을 협연하며 5년 만에 무대로 돌아왔고, 대관령국제음악제 공동 예술감독을 맡았습니다. 63세에 호암상 예술상을 받았고 9년 만의 독주회를 열었습니다. 64세에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됐습니다. 66세에는 12년 만에 영국 무대에 서 런던 로열페스티벌홀에서 연주했습니다.
68세에 15년 만의 앨범으로 바흐 무반주 소나타와 파르티타 전곡을 냈습니다. 69세에 카네기홀에서 이 전곡을 하루에 연주했습니다. 70세에 평창대관령음악제 예술감독에서 물러났고 33번째 음반 「아름다운 저녁」을 냈습니다.
72세에 김선욱과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을 연주했습니다. 73세에는 왼손 부상으로 통영국제음악제 공연을 취소했습니다. 75세에 동생 정명훈과 30년 만에 듀오로 연주했습니다. 77세에 케빈 케너와 국내 투어를 마친 뒤 8년 만에 카네기홀 무대에 섰습니다.
정경화(1948년 3월 26일생)는 13세이던 1961년 미국 줄리아드 음악원에 입학했고, 19세이던 1967년 5월 16일 레벤트리트 콩쿠르에서 공동 1위에 오르며 이름이 알려졌습니다. 22세이던 1970년 5월 13일에는 런던심포니와의 협연으로 유럽 무대에 데뷔했습니다.
나이는 연도 기준입니다(그 해 − 출생 연도). 생일 전후를 따지지 않습니다.